◎ 제안 취지 및 주요쟁점
1. 문제 의식: ‘도입’은 빠르지만 ‘전환’은 비어 있다 기업용 AI 에이전트의 도입 속도는 이미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2025년 주요 조사에서 다수 기업이 에이전트를 도입했다고 응답했고, 2026년에는 대부분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에 에이전트 기능이 내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도입률이라는 표면 지표는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조사들은, 에이전트를 도입하고자 선언한 기업의 상당수에서 실제로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는 직원은 절반 이하이며, 업무 방식 자체를 재설계한 기업은 소수에 그친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대부분의 도입은 기존 업무 흐름을 그대로 둔 채 반복 작업의 속도를 높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세션은 AI 에이전트의 도입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에이전트는 이미 업무 환경의 일부이며, 이 세션의 관심사는 그것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리고 현재의 방식은 우리의 바람과는 꽤나 어긋나 있다는 것이 이 세션의 출발점이다. 현재 산업의 에이전트 도입은 업무 파이프라인 전체의 효율 향상보다, 단기적 인건비 절감과 말단 업무의 자동화에 치우쳐 있다.
이러한 치우침은 두 가지 비용을 발생시킨다. 하나는 조직의 업무 흐름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사람의 역량 형성 차원에서 나타난다. 이 세션은 두 비용을 차례로 짚은 뒤, 그것을 완화하기 위한 설계 원칙을 제안한다.
2. 효율은 시간 절감이 아니다: 에이전트의 본질적 강점과 어긋난 도입 현재의 도입 방식이 전제하는 ‘효율’은 대체로 작업 시간 절감이나 인력 대체량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실제 조직의 업무는 독립된 단위들의 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흐름이다. 어떤 업무 결과물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아니라, 다음 단계에서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재사용 가능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초기 단계의 결과물이 맥락을 충분히 담지 못하면, 그 부족분은 후속 단계에서 반복 조사와 재작업의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진짜 효율은 작업당 시간이나 인원당 비용이 아니라, 후속 활용 가능성, 판단의 신뢰성, 흐름의 연속성, 맥락의 보존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AI 에이전트를 어디에 쓰는 것이 그 강점을 살리는가가 분명해진다. 에이전트의 핵심 능력은 여러 문서와 데이터를 동시에 참조하고, 흩어진 정보를 검색해 종합하며, 한 작업의 맥락을 다음 작업이 쓸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해 전달하는 데 있다. 에이전트를 단순 잡무 처리에 쓸 때, 이 능력의 대부분은 발휘될 자리를 얻지 못한다. 회의록 정리, 문서 포매팅, 데이터 입력 같은 잡무는 정의상 하나의 단계 안에서 닫히는 작업이다. 입력과 출력이 같은 단계 안에 있고, 다음 단계와 연결될 필요가 없다. 이런 작업에 에이전트를 투입하면 에이전트는 사실상 빠른 손으로만 쓰이며, 여러 출처를 묶어 후속 작업이 쓸 형태로 구조화하는 능력은 그 작업에 해당될 일이 없어 그대로 놀게 된다.
에이전트의 능력이 한꺼번에 의미를 갖는 것은 작업이 단계와 단계 사이를 가로지를 때다. 한 단계의 산출물을 다음 단계가 곧바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출처의 참조와 정보의 종합, 맥락의 구조화된 전달이 모두 동시에 요구된다. 앞서 제시한 후속 활용 가능성, 흐름의 연속성, 맥락의 보존과 같은 효율의 척도가 정확히 이 단계 사이의 작업을 평가하는 척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에이전트를 잡무 처리에 쓰는 것은 그 능력의 일부만 쓰는 것이고, 업무 흐름의 조율에 쓰는 것은 능력 전체를 쓰는 것이다. 에이전트의 가장 큰 기여는 개별 작업을 빠르게 끝내는 데 있지 않고, 조직 전체의 정보 흐름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줄이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도입은 이 강점과 어긋나 있다. 여러 컨설팅 기관의 2025-2026년 분석은 일관된 패턴을 보고한다. 의미 있는 투자 수익을 보고한 조직은 에이전트 배포 이전에 업무 흐름 전체를 재설계했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조직의 약 두 배이며, 재설계 없이 기존의 깨진 업무 흐름에 에이전트를 꽂으면 자동화는 오히려 복잡성과 비용을 늘린다. 업무 흐름을 근본적으로 다시 구상하지 않은 에이전트 도입은 표면적 생산성 수치는 만들어내더라도, 조용한 실패와 누적되는 오류, 사용자의 거부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고객 응대 자동화에서 이미 실명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스웨덴의 BNPL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약 700개의 고객 서비스 직무를 줄이고 이를 AI 어시스턴트로 대체했으며, 정점에서는 AI가 전체 고객 상호작용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을 처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잡한 문의에서 응대 품질이 떨어지고 사람 응대로 넘어갈 통로가 부족하다는 불만에 부딪히면서, 2025년 다시 사람 상담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CEO는 효율과 비용에 집중한 결과 서비스 품질이 낮아졌으며 AI의 역량을 과대평가했다고 인정했다(Bloomberg, 2025). 이 사례는 대체 중심의 도입이 단기 지표상으로는 성공처럼 보이다가 흐름 전체의 품질에서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빠진 절반: 인재상의 허들이 개인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단기 자동화 중심의 도입은 업무 흐름만이 아니라 사람의 역량 형성에도 비용을 남긴다. 다만 그 비용은 흔히 알려진 ‘신입 채용 감소’라는 정량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채용 규모가 줄어드는가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최상위 기업의 신규 졸업자 채용이 크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도입이 급증하는 가운데에도 다수 경영진이 신입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답한 조사가 있다. 채용의 양은 이 세션의 핵심 쟁점이 아니다.
쟁점은 채용의 양이 아니라 신입에게 요구되는 역량 기준의 성격이다. 조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신입에게 기대되는 역량이 좁은 기술 지식에서 적응력, 비판적 사고, 사람과 에이전트의 협업 능력, 도메인 맥락 이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은 신입에게 요구하는 역량을 인간 영역, 에이전트 영역, 비즈니스 영역으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스킬의 수명이 빠르게 짧아져 ‘6개월 단위로 필요한 역량’을 상정한다고 밝혔다. 이미 다수 조직이 신입 채용의 기준 자체를 바꾸었으며, 이는 신입 자리를 없앤 것이 아니라 진입에 요구되는 역량을 재편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 세션이 지적하려는 모순이 발생한다.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들은 그 성격상 학위나 자격증처럼 입사 이전에 개인이 외부에서 완성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적응력, 사람과 에이전트의 협업, 도메인 맥락 이해, 빠르게 바뀌는 도구에 대한 숙련은 특정 조직의 도구, 데이터, 의사결정 구조, 내부 언어, 규제 환경 안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며 형성되는 능력이다. 그런데 기업은 여전히 이 능력을 ‘준비된 인재’의 조건으로 요구하며, 그 형성 비용을 학위, 인턴, 포트폴리오, 사이드 프로젝트, 자기계발의 형태로 개인에게 전가한다. 개인은 입사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만 형성되는 능력을, 입사 이전에 갖추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 구조는 개인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만 문제가 아니라, 자원 배분의 관점에서도 비효율적이다. 능력이 형성되는 장소는 조직의 내부인데 그것을 요구하는 시점은 입사 이전이다. 형성의 장소와 요구의 시점이 어긋나 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려는 모든 노력이 잘못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수많은 지원자가 입사 여부가 확정되지도 않은 조직을 향해 방향을 추측하며 자원을 투입하고, 그 대부분은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버려진다. 사회 전체로 보면 막대한 규모의 중복 투자가 회수되지 못한다. 기업의 측면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기업은 더 많은 것을 갖춘 신입을 가려내기 위해 더 긴 선별 과정과 더 높은 임금, 더 좁은 후보군이라는 비용을 치르지만, 정작 업무에 필요한 능력은 조직 특수적인 것이어서 입사 이후 다시 형성되어야 한다. 선별에 투입한 비용이 신입의 실제 전력화 수준을 그만큼 끌어올리지 못한다. 즉 개인에게 능력 형성을 떠넘기는 방식은 개인에게 불공정할 뿐 아니라, 기업과 사회 모두의 자원을 잘못된 자리에 쓰게 만드는 비효율적인 구조다.
전통적으로 이 간극을 메워온 것이 신입의 초기 업무였다. 회의록 정리, 리서치 보조, 문서 수정, 데이터 정리, 내부 도구 사용, 상사의 피드백 반영 같은 일은 비효율적인 잡무인 동시에, 신입이 ‘이 조직은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가’를 체득하는 학습 경로였다. AI 에이전트는 이 초기 업무에 섞여 있던 불필요한 잡무와 실제 학습 기능을 분리할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위험은 에이전트가 신입 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 그 업무의 학습 기능을 재설계하지 않은 채 잡무와 함께 학습 경로까지 자동화로 제거하는 데 있다. 신입이 저수준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게 되면, 시니어 역할에 필요한 암묵지와 직관은 형성될 자리를 잃는다. 요구되는 허들은 높아지는데 그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은 닫히는 셈이다.
이 두 비용(업무 흐름 품질의 저하, 역량 형성 경로의 단절)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원인의 두 결과다. 둘 다 도입의 시간축이 지나치게 짧다는 데에서 나온다. 업무의 후속 활용 가능성을 보지 않는 시선과, 사람의 다음 성장 단계를 보지 않는 시선은 동일한 단기성의 두 얼굴이다.
4. 제안: 거버넌스의 기준을 ‘협업 구조와 역량 축적’으로 그러므로 AI 에이전트 거버넌스는 단순 자동화의 관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협업 구조와 인간 역량 축적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현재 기업용 에이전트의 설계 기준은 대체로 정확성, 보안, 규정 준수, 효율에 맞춰져 있다. 이 세션은 여기에 한 층을 더할 것을 제안한다. 에이전트가 업무를 수행할 때 조직의 학습 구조와 정보 흐름을 악화시키지 않고, 가능하면 개선하도록 만드는 내장 원칙이다. 이것은 윤리적 장식이 아니라 효율을 위한 구조화이기도 하다. 조직문화가 나쁘면 정보가 흐르지 않고, 피드백은 방어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신입은 질문을 숨기고, 상사는 설명 비용을 아끼려 한다. 그 상태에서는 에이전트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업무 흐름은 회복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에이전트를 ‘생산성 혁신’으로 내세우는 대표 기업들 자신이 관료화, 도구 파편화, 잦은 조직개편, 매니저 역량 편차, 학습의 개인책임화 같은 조직문화 문제로 비판받아온 조직이라는 점은 이 제안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한다. 같은 에이전트라도 그것이 조직의 학습과 업무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데 쓰이는지, 아니면 기존의 관리 통제와 성과 압박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지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이 세션은 아래의 설계 원칙 초안을 제시하고, 이를 패널 토의와 청중 논의를 통해 검토한다. 원칙은 에이전트 자체의 설계에 적용되는 규칙과, 기업이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방식에 적용되는 규칙으로 구분된다.
4.1. 에이전트 설계에 적용되는 원칙 – 맥락 투명성: 판단, 추천, 요약, 피드백에 사용한 맥락과 근거를 밝힌다. ‘부족하다’가 아니라 ‘고객 요구사항, 지난 회의의 결정, 기존 템플릿, 팀의 품질 기준을 근거로 했다’처럼 제시한다. 조직의 암묵지를 가시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 피드백의 학습 단위 변환: 평가성 발언을 학습 가능한 정보로 분해한다. ‘수준 미달’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어떤 기준에서 어떤 부분이 왜 부족하며 다음에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로 나눈다. 단, 비판을 무조건 희석하지는 않는다. 감정적 충격을 줄이되 정보의 날카로움은 유지한다. – 초심자 대상 설명 보강: 사용자가 해당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때, 업무 과정을 더 상세히 설명하고 조직 특유의 맥락과 판단 기준을 함께 전달한다. 회사 밖에서 배울 수 없는 조직 내부 지식을 업무 수행 중에 습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 산출물과 인격의 분리: 산출물, 행동, 절차의 문제를 사람의 본질적 능력이나 인격의 문제로 바꾸지 않는다. ‘당신은 부족하다’가 아니라 ‘이번 산출물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로 유지한다. 인권적 원칙이면서 동시에 피드백 효율의 원칙이다.
4.2. 에이전트 운영에 적용되는 원칙 – 양방향 정리: 위에서 아래로 맥락을 전달할 뿐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질문과 개선 제안도 검토 가능한 형태로 정리한다. ‘이 제안은 현재 정책과 충돌하지만 비용 절감 가능성이 있어 특정 조건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처럼 정리하면, 미숙한 질문을 걸러내면서도 좋은 신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 절차 비대화 방지: 승인, 보고, 상태 업데이트를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정보 흐름과 의사결정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 원칙이 없으면 에이전트는 티켓과 알림과 점검 항목을 무한히 늘리는 자동화된 관리자가 될 수 있다. – 대행보다 역량 형성 우선: 가능한 경우 업무를 대신 끝내기보다, 사람이 다음번에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과정과 기준과 점검 지점을 남긴다. 에이전트의 목표는 ‘사람 없이 처리’가 아니라 ‘사람이 에이전트와 함께 더 빨리 숙련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세션에서 우리는 위 원칙들을 고집하기보다, 보다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원칙의 타당성, 그것이 설계 권고의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채용과 노동 영역의 기준으로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단기 생산성과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하는지를 패널 및 청중과 함께 검토할 것이다.
* 패널의 의견은 그 단체 또는 소속의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